"영양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언니는 교사인 나의 우상"
"영양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언니는 교사인 나의 우상"
  • 정지미 기자
  • 승인 2016.11.14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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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보호소 단독보도 3]영양사 유가족 단독 인터뷰

 

▲ 영양사인 언니를 존경했던 여동생에게 김 영양사는 그림 한 점만을 남기고 떠났다.

 

 지난 11월 1일, 본지는 청주외국인보호소 김 영양사의 유가족을 청주 자택에서 만나 지난 50일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큰 숨을 자주 들이 마셔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몸이 쇄약해진 상태였고, 여동생은 깡마른 몸에서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막내 남동생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냉랭했다.

6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가족들은 “누구도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도 12년간 묵묵히 일해 왔는데, 관행이었던 식재료 전용 때문에 죽을 이유가 없다. 한 순간 모르쇠로 일관한 조직으로부터 받은 배신감과 억울함 그리고 그에 따른 외로움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것이다”며 가족을 잃은 아픔을 토로했다.

“도대체 영양사라는 직업이 무엇이냐?

김 영양사의 어머니는 기자에게 “영양사라는 직업이 도대체 무엇이냐. 불량식품 먹이지 않고, 식중독 없도록 위생적으로 운영하며, 영양적으로 균형 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거 아니냐”고 문답을 이어갔다.

딸의 죽음 이후에야 12년간 명확한 예산이 없이 직원 급식을 운영하기 위해 식재료를 전용할 수밖에 없었던 관행에 대해 알게 됐다.

어머니는 “국가가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정확하게 업무를 볼 수 없는 구조 속에 밀어 넣고, 그 위에 관리자들은 조리종사원들의 처우개선 하나 정리하지 못해 영양사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왕따식으로 업무를 처리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하는 게 말이 되냐”며 가슴을 쥐어 잡았다.

취재 중간 조금씩 진정을 찾은 어머니는 수면제를 복용해도 잠을 자지 못했던 딸을 떠올리며 “너무 괴로워하던 그때 강제로라도 입원을 시켜서 직장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나는 어미로서 자격이 없다”며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자살 당일에도 김 영양사는 그에게 “힘들어도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날도 어머니는 딸을 잡지 못하고 급식소로 보냈다고 흐느꼈다.

“언니는 청주보호소를 너무 사랑했다”

김 영양사와 동생 두 자매는 독립해 함께 자취생활을 했다. 자매 사이는 ‘서로 결혼하지 말고 평생 같이 살자’는 맹세를 할 정도로 돈독한 우애를 자랑했다.

여동생은 현직 학교 교사. 그는 “언니는 나의 우상이었다. 12년간 영양사로서 언제나 즐겁게 일했고, 바쁜 와중에도 단체급식 분야 공부에 끊임없이 매진하는 모습을 보며 교사가 된 걸 후회하기도 했다”며 영양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언니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지난 50일간 주말마다 김 영양사와 동행해 언니 일을 도와주며 영양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 모두 깨졌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야말로 개처럼 일하는…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암담했다”고 언니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즐겁게 일을 한 거지?”
여동생은 언니를 떠나보내고서야 ‘영양사로서 일은 버거웠지만 가족 같았던 조리종사원 그리고 직원들과의 쌓아온 12년이라는 시간의 힘으로 버텨온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실제 김 영양사는 조리종사원들과 여행도 가고 개인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훤하게 알 정도로 가까웠다. 함께 근무한 조리종사원들이 “나이가 들어 힘들어 한다”며 김장을 직접 담그는 등 조리종사원들의 업무를 서슴지 않고 거들기도 했다.  

여동생은 “언니는 누구 한 명이라도 함께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면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며 사무치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렇게 김 영양사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연히 발견한 그림 몇 점.

기자가 그림에 시선을 주자 어머니는 “우리 딸이 평소 그림을 좋아했다”며 “지난 8월 인사혁신처 주최 공무원 대상 그림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단체급식의 인재가 가서 안타깝다”

한편 김 영양사는 급식과 조리 관련 9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보호소 급식의 식품 위생에 대한 HACCP 적용을 통한 급식 안전성 확보 방안에 대해 정책 발표를 하기도 했다.

보호외국인 대상 6개 국어로 번역된 설문지를 개발해 만족도를 올리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법무부 장관 표창을 2회나 받는 등 단체급식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이외 대한영양사협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했으며, 내년 2월에는 박사학위 취득도 예정되어 있었다.

지도교수였던 충북대학교 이영은 교수는 “그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그 어떤 누구도 그를 만난다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책임감이 유독 강했던 제자를 회상했다.

덧붙여 “8월 중순까지는 늦게 퇴근을 하고서라도 준비했던 박사논문이었다. 그런데 식재료 전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다음 학기로 미뤘다”며 그 이후 여러 차례 통화에서도 힘들어했던 제자를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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