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기로에 선 식영과 인증제, 대안은 없나
[이슈] 기로에 선 식영과 인증제, 대안은 없나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3.07.09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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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순 의원 인증제 의무화 법안, 이르면 올해 9월 국회 통과할 듯
“학생 수 감소에 대학 재정도 안 좋은데…” 남은 식영과도 없어질라
일부에서 찬성 의견도 있지만, 대다수 우려하는 목소리 높아
일선 대학 교수들, 법사위 통과 전 법안 막자는 움직임도 보여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대학 식품영양 관련학과(이하 식영과) 교육과정을 체계화하고, 이 과정을 인증하는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도(이하 인증제)’ 의무화법이 빠르면 올해 9월 국회 본회의 통과가 전망되면서 일선 대학 식영과 관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증제 의무화가 각 대학 식영과를 오히려 통폐합시키는 촉매제가 될 뿐만 아니라 ‘보여주기’식 자율 인증제를 운영해 온 특정 단체를 위한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인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7월 발의한 ‘국민영양관리법 일부개정안’이 지난 5월 초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를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도’ 의무화 법안이 지난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 모습.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도’ 의무화 법안이 지난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 모습.

해당 법안은 4월 26일 열린 복지위 제2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후 위원회에서 제시한 수정안대로 복지위를 통과했다. 법안심사소위원회는 해당 법안은 원안대로 통과시키면서 법 시행 시기를 2년 후로 늦추는 단서 조항을 신설했다. 

‘영양사’ 면허는 그 역사가 짧지 않다. 오랫동안 지속된 만큼 식영과의 명칭과 교육과정은 다양하게 변화했고, 영양사가 진출하는 사회 분야도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 영양사 교육과정도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한급식신문의 취재에 응한 한 영양사는 “식중독균 정보는 이해할 수 있어도 해당 식중독균에 대한 연구 결과와 새롭게 나오는 예방법 등을 커리큘럼에 반영하지 않는 교수들도 많다”며 “결국 식영과는 기초만 알려주는 셈이라 스스로 공부해 성장하라는 것인데 이는 식영과의 존재 목적을 망각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현실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인증제다. 대학의 커리큘럼을 체계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교육내용을 대학이 커리큘럼에 반영하도록 이끌고, 이를 토대로 현장에서 요구되는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영양사를 배출할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인증제는 (재)한국영양교육평가원(원장 손정민, 이하 평가원)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거쳐 2016년부터 자율 인증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 왔고, 현재 2022년 인증을 받은 대구가톨릭대학교와 한양대학교을 포함해 모두 16개 대학이 인증을 받은 상태다. 

남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이 인증제의 ‘의무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즉 인증을 받지 않은 대학의 식영과 졸업생은 영양사면허 시험응시 자격을 얻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인가를 받은 ‘인정기관’이 정기적으로 대학을 인증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법안은 지난해 7월 최초 발의할 당시부터 일선 대학 관계자들의 적지 않은 우려를 낳았다. 일부 식영과 교수들은 “신입생 모집과 영양사 처우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우려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도 의무화 법안을 바라보는 각 대학들의 시선은 매우 복잡하다. 사진은 지난 2022년 평가인증을 받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수업 모습.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도 의무화 법안을 바라보는 각 대학들의 시선은 매우 복잡하다. 사진은 지난 2022년 평가인증을 받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수업 모습.

당장 전체 학생 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대학들이 ‘융합학과’를 만들거나 아예 폐과하는 사례가 많은데, 무리하게 평가인증을 대학 측에 요구하면 식영과가 통폐합 대상 학과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3년간 통폐합된 식영과 숫자는 10여 개에 달한다. 식영과는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조리 관련 학과에 흡수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폐과됐다. 이런 경향은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에서 매우 두드러졌다. 

경기도의 한 전문대학 교수는 “평가인증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전임교원과 시설을 늘려야 하는데 응시율이 높은 학과도 아닌 식영과에 대학이 막대한 투자를 할 리가 없다”며 “지금도 평가원에 지급하는 500만 원의 인증 비용도 대학 측에 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교수는 “인증제 취지는 동의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라며 “지금 대학계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해 자연스럽게 솎아지고 있는 과정인데 여기서 무리하게 인증제 의무화를 시행하면 존재 의미가 있는 대학 식영과까지 없애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정기관 ‘평가원’으로 내정? 
“인정기관부터 인증해야”

평가인증을 전담할 인정기관의 선정에도 문제가 제기된다. 인정기관은 각 대학의 교육과정을 꼼꼼하게 심사하고, 인증해야 하기 때문에 주무 부처인 교육부가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게 선정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인증제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기관이나 단체가 없는 실정이라 사실상 ‘평가원이 내정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는 복지위 심사과정에서도 언급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평가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매우 강한 편이다. 평가원은 2010년 (사)대한영양사협회(회장 김혜진, 이하 영협)의 산하기관으로 설립된 단체. 영협이 오랫동안 정·관계에 인증제 의무화를 위해 로비를 해왔고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의원들과 접촉하며 법제화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영협은 ‘영양사 교육과정 체계화 및 발전’보다 평가인증을 통해 벌어들일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급식 관계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복지위를 통과한 남 의원의 법안은 영협의 오랜 숙원이 해결된 셈이다.

영협과의 관계를 제외해도 평가원이 인정기관으로 자격 미달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된 ‘영양교육평가인증제 현황’ 허위 보고 사건이 발목을 잡는다.<본지 357호(2023년 4월 10일자) 참조> 당시 평가원은 복지위 전문위원이 법안 검토를 위해 인증제 운영현황을 요청하자 인증대학의 인증기한을 임의로 변경해 제출했다. 

즉 인증 기간이 만료되면 당연히 재인증을 밟아야 하는데 일부 대학에 특별한 사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인증 기간 연장’을 통보해 인증제의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인증 기간이 끝난 것도, 재인증이 필요하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심지어 인증 기간이 연장된 사실조차 몰랐다”며 “평가원이 인증제를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한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 전문위원실의 검토보고서에서도 나타나듯 평가원이 운영해온 자율 인증제가 이번 법안 통과에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한데 평가원은 불분명한 정보로 법안을 억지로 통과시킨 것”이라며 “인증제 의무화를 말하기 전 인정기관 인증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는 시간문제
대학 통폐합 막을 대책 필요

현재 복지위를 통과한 해당 법안은 다음 단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 회부된 상태며, 법사위 통과 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곧바로 발효된다. 다음 정기국회는 9월부터 11월까지 열릴 예정이지만, 2024년 총선 탓에 빠르게 일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 법사위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맡는데 통상 여야 쟁점 법안이 아닌 경우 미리 논의해 통과시키기 때문에 해당 법안은 이르면 9월 말, 늦어도 10월 말에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뒤늦게 법안이 복지위를 통과한 소식을 접한 일선 대학교수들은 법사위 통과 전에 법안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8년 전부터 인증제 의무화를 반대해왔다는 한 대학교수는 “2년의 유예기간은 모든 지방대학·전문대학 식영과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며 “최소한 5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 같은 의견을 법사위에 전달하기 위해 여러 교수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에서 제기되는 의견에 대해 평가원 관계자는 “원장님을 비롯해 평가원 구성원들은 인증제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과 의견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며 “8월 중 대학교수님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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