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낙엽된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
추풍낙엽된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3.12.11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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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사위 상정됐으나 교육부 등 반대로 논의조차 못해
법안 통과 무산되면 ‘평가인증제’와 ‘평가원’ 모두 사라질 판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대학 식품영양 관련 학과(이하 식영과) 교육과정을 체계화하고, 이 과정을 인증하는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이하 평가인증제)’ 의무화 법안이 결국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급식신문 357호·363호(2023년 4월 10일·7월 10일자) 참조>

일선 식영과 관계자들은 “평가인증제 의무화로 막대한 수익을 노렸던 (사)대한영양사협회(회장 김혜진, 이하 영협) 의도가 무산돼 다행”이라는 반응과 함께 “장기적으로는꼭 추진해야 하는 평가인증제 목적과 가치가 훼손된 것이어서 안타깝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22년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을 받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수업 모습.
2022년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을 받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수업 모습.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소위)는 지난달 21일 남인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국민영양관리법 일부개정안(이하 개정안) 등 8개 법안을 심사했다. 개정안은 ‘대학의 영양사 교육과정을 체계화하고 반드시 인증받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면서 인증받지 않은 대학 식영과 졸업생은 영양사 면허시험 응시 자격을 얻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날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정부 부처의 반대가 강했기 때문. 의안 설명에 나선 박동찬 법사위 전문위원은 “고액의 인증 비용, 인정기관의 부재 등 여러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법을 개정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인정기관을 통하는 경우 영양사의 질적 관리가 더 높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영양사 질적 수준은 의무 평가인증제가 아닌, 영양사 국가시험제도를 통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부(부총리 겸 장관 이주호)와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회장 장윤금),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장제국)에서 반대의견이 나오는 등 먼저 충분한 소통을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영양사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인증을 의무화할 경우 대학의 연구·교육에 경직성을 초래하고, 대학의 행·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지난달 21일 회의를 열고 국민영양관리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심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지난달 21일 회의를 열고 국민영양관리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심의했다.

영양사 교육과정 인정기관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박 전문위원은 “인정기관이 없는 상태에서 인증 획득 의무화는 현실에도 맞지 않아 인정기관 지정 이후 법제화 검토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며 “(소관 복지위에서 반영한 단서 조항 ‘시행 유예기간 2년’에 대해) “인정기관이 없는 상태에서 유예기간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인정기관 지정 후 2년’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견이 강하게 나오자 다른 법안과는 달리 위원들의 찬반 토론도 없이 논의가 종료됐다.

위기 몰린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제'··· 존재 부정 당한 '(재)한국영양교육평가원'

이번 개정안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큰 잡음 없이 복지위를 통과해 본회의까지 무리가 없을 분위기였다. 하지만 ‘인증 의무화’에 부담을 느낀 대학들이 교육부를 통해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법사위에 전달하면서 심사 단계가 6개월 이상 계류됐다.

정부도 대학도 모두 등 돌린 법안

여기에 현재 국회는 국정감사를 마치고 2024년도 정부예산을 심의 중이라 여타 법률 개정안을 논의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내년 4월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도 있어 올해를 넘기면 다음 국회는 총선 이후에 열리게 되며, 이마저도 21대 국회 임기는 2024년 6월 말까지라 이 기간 내 통과되지 못한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따라서 법안을 추진한 영협은 이번 소위가 열리기 전까지 어떤 식으로든 반대가 강한 교육부와 대학들을 설득해야 했으나 결국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무인증에 대한 부담과 식영과 강제 통폐합 우려 등 개정안이 가져올 부작용이 크다는 것에 교육부와 대학들이 적극 공감하면서 이날 제시된 대체토론 요지는 모두 ‘반대의견’뿐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그간 운영해온 자율 평가인증제 자체가 국회는 물론 정부와 대학들로부터 사실상 ‘부정’당한 것이어서 향후 법안 통과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영협은 2016년부터 산하기관인 (재)한국영양교육평가원(원장 손정민, 이하 평가원)에서 평가인증제를 운영했으나 대학들의 낮은 선호도와 부실 운영 등이 밝혀지며 신뢰를 크게 잃은 상태다.

평가원의 하락한 신뢰가 이번 소위에서 객관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자율 평가인증제를 운영하는 인정기관이라 볼 수 있는 평가원이 존재함에도 인정기관 지정 권한이 있는 교육부가 개정안을 반대하고, 인정기관이 없는 상태에서 법안 통과는 옳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 또한 개정안 시행 유예기간을 ‘인정기관 지정 후 2년’이라는 주문까지 나온 것은 ‘평가원을 인정기관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이다.

기존 자율 평가인증제 폐지되나

개정안 통과가 무산되면 영협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지난 2016년부터 운영해온 자율 평가인증제에 대한 명분과 근거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영협은 2016년 충남대와 한양여대를 대상으로 첫 자율 평가인증제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6개 대학을 인증했다.

2016·2018년도에 평가를 받은 *4개 대학은 인증기간 4년을 경과하였으나 평가인증제의 법제화 까지 2주기 평가를 유예하고, 인증기간을 연장해줌. (한국영양교육평가원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 규정」 2020. 10에 의함)
※ 2016·2018년도에 평가를 받은 *4개 대학은 인증기간 4년을 경과하였으나 평가인증제의 법제화 까지 2주기 평가를 유예하고, 인증기간을 연장해줌. (한국영양교육평가원 「영양사 교육과정 평가인증 규정」 2020. 10에 의함)

이들 대학의 인증 기간은 모두 4년으로, 16개 대학 중 4개 대학은 이미 인증 기간이 지났음에도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예정이라는 명분으로 재인증을 유예해왔다. 이런 가운데 2024년 2월 28일 인증이 추가로 만료되는 대학은 8개에 달하는데 법안이 무산되면 재인증을 미룰 핑계가 없어지는 셈이다.

게다가 일부 대학에서는 인증과정이나 재인증 유예 결정조차 해당 대학과 협의 없이 진행했다고 지적하고 있어 영협이 재인증을 진행하더라도 인증을 포기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영양사 직군의 발전을 위해 평가인증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교수는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교수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실패하게 만든 장본인이 영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 평가인증제는 물론 현재 평가원의 자율 평가인증제도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평가원 관계자는 “아직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국회 회기가 남은 만큼 정부와 의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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