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환기설비의 핵심, 결국 ‘급기’에 있었나
[이슈] 환기설비의 핵심, 결국 ‘급기’에 있었나
  • 김기연 기자
  • 승인 2023.12.1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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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가이드·기술지침, ‘급기’ 기준 만큼은 다소 부실
실내 ‘조리흄’뿐만 아닌 외부 ‘미세먼지’ 유입도 위협 요소

[대한급식신문=김기연 기자]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모든 학교급식 종사자를 대상으로 이뤄진 폐암 검진에서 수백여 명이 ‘폐암 확진’ 또는 ‘폐 이상 소견’을 받은 후 ‘학교급식 조리실 환기설비 개선 사업(이하 환기설비 개선 사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환기설비 개선 사업은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이하 노동부)가 제안한 ‘학교급식 조리실 환기설비 설치 가이드(이하 가이드)’와 ‘단체급식시설 환기에 관한 기술지침(이하 기술지침)’에 근거해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두 가지 기준 모두 공통적으로 ‘급기설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대한급식신문은 ‘배기’만큼 중요한 ‘급기’에 대해 교육계와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진단했다.

- 편집자주 -


2017년 노동부가 학교급식소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기로 결정한 이후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2020년 전부터 꾸준히 주장해온 조리 종사자 폐암 문제가 마침내 사실로 확인됐다. 그리고 2021년 근로복지공단이 조리 종사자의 폐암을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하면서 그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부각됐다.
그러던 중 2022년 폐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조리 종사자가 갈수록 늘어나자 교육 당국은 조리실 ‘작업환경측정검사’를 실시하는 동시에 전체 조리 종사자를 대상으로 폐암 검진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심각했다. 수백여 명의 조리 종사자들이 폐암 확진을 받은 것.

지나친 ‘배기설비’ 위주의 정책

노동부와 교육부는 폐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조리흄’을 지목했다. 교육 당국은 조리흄이 더 이상 조리 종사자들을 위협하지 않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조리흄 발생을 조금이라도 억제할 수 있는 전기식 조리기구 도입을 확대했다. 여기에 조리흄 원인으로 지목되는 튀김과 볶음요리 대신 오븐요리를 추천하면서 조리실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을 원활히 배출하기 위해 환기설비 개선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전남 담양군 A고등학교에 설치된 급기설비. (주)코리아세이프룸에서 개발한 강제 급기설비는 외부의 공기를 흡입해 정화한 뒤 식당으로 공급한다.
전남 담양군 A고등학교에 설치된 급기설비. (주)코리아세이프룸에서 개발한 강제 급기설비는 외부의 공기를 흡입해 정화한 뒤 식당으로 공급한다.

일련의 흐름에 대해 단체급식 종사자들은 개선 의지는 인정하지만 지나치게 ‘배기설비’ 위주의 정책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는 조리실 환기설비 개선의 기준을 만들 때부터 나왔던 지적이기도 하다. 2021년 하현철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가 노동부로부터 의뢰받은 연구용역에서도 급기는 주요 의제가 아니었다.

당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는 ‘급기는 후드 포집효율을 저하할 우려가 있으니 창문과 출입구의 급기(자연 급기) 유속을 평가하고, 일정 유속을 넘어설 시 강제 급기가 필요하다’고 짧게 언급했다. 그리고 이 같은 급기에 대한 부족한 연구 결과는 고스란히 가이드로 이어졌다.

이후 가이드가 학교급식 조리실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노동부가 제안한 기준은 기술지침이다. 지난해 12월 최초 제안됐으나 지난 8월 한 차례 개정됐다. 그러나 기술지침에도 급기는 최초 연구 수준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기술지침이 가이드와 비교해 발전된 점은 ‘강제 급기가 필요할 경우 급식실 총 배기량의 90%를 상회하지 않는 수준으로 급기량을 결정한다’는 기준 정도다.

외부 유입 ‘미세먼지’도 위험 요소

조리실 환기에서 급기가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급식실에서 발생하는 위험물질 조리흄뿐만 아니라 급식실 외부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도 상당한 문제가 되는 물질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봄철에 찾아오는 황사 수준이던 미세먼지는 이제 우리 주변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이드와 기술지침에서 제시한 자연 급기는 이 같은 미세먼지의 조리실 유입을 걸러내지 못한다.

특히 후드와 덕트 성능이 강해지면 조리실 밖으로 밀어내는 공기량이 많아지고, 이는 결국 자연 급기 시 외부 공기를 강하게 빨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리흄 대신 미세먼지가 조리 종사자들을 위협하게 하는 셈이다.

지역의 한 급·배기 설비 전문가는 “배기만큼 중요한 것이 급기인데, 급기에 대한 기준과 논의 없이 배기만 강조하다 보니 환기설비 개선 작업이 완벽히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라며 “자칫 막대한 예산 낭비 사례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급기는 급식소 전체 공기를 좌우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학교급식소는 대부분 식당과 조리실이 붙어있어 조리실과 식당의 공기가 차단되기 어렵다. 이런 구조는 조리과정의 안전과 조리 종사자들의 노동강도를 조금이나마 낮추기 위한 것으로, 일부 학교는 조리실과 식당을 연결하는 문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따라서 조리실에서 발생한 조리흄과 외부에서 유입된 미세먼지는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된다. 자연 급기 대신 강제 급기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하 조리실의 대안, ‘급기설비’

현재 강제 급기를 위해서는 여러 대안이 있지만, 가장 우선 고려되는 것은 강제 급기설비를 설치하는 방법이다. 경기도교육청(교육감 임태희, 이하 경기교육청)이 경기도의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내 조리가 이뤄지는 학교 2291개 중 140개 학교가 급기설비를 별도로 갖춘 것으로 확인된다.

이 같은 급기설비는 1대당 1000만 원가량으로 후드와 덕트 공사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수준이라 볼 수 있다.

특히 강제 급기설비는 외부 공기를 흡입해 정화한 뒤 급식소 내부로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장비로, 급기량은 최소 500cmh(㎥/h)에서 2000cmh로 다양한 편이다. 조리실과 식당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2대 혹은 4대 정도를 설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설비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코리아세이프룸 관계자는 “강제 급기설비를 설치한 학교에 근무하는 급식 종사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며 “환기설비 개선 공사를 하지 않은 학교의 경우 부족한 환기설비 성능을 보완해주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급식소 공기가 깨끗해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실제 급기설비가 설치된 전남 A고등학교 관계자는 “대량조리를 하는 조리실 특성상 항상 진한 음식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데 급기설비를 설치한 후 냄새가 없어진 것은 물론 공기가 깨끗해진 것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구조적으로 공기의 질이 나쁠 수밖에 없는 지하·반지하 조리실에는 급기설비가 우선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하·반지하 조리실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공기의 질이 나쁠 수밖에 없어 이를 해결하려면 조리실을 지상으로 이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조리실 이전이 어렵다면 강제 급기설비라도 설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방법이라는 것.

김미리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도 지난달 실시된 경기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김 의원은 “경기도내 37개 학교의 급식실이 지하·반지하 형태인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9개 학교는 실외 공기를 실내로 공급하는 급기설비가 없다”며 “자연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지하 및 반지하에 있는 학교에 우선적으로 급기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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